울릉기행, 설국

울릉기행, 설국
雲海, 산 위에서 보노라면 저게 안개일까 구름일까 고민하는 것이 의미 없었다.

어쩌면 2년 반의 짧게나마 살았던 울릉도는,
그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 무진이 아니었을까.
또 설국이 아니었을까.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설 명절 마지막날 새벽부터 불려나와
밤 늦게 까지 제설을 하던 그 날,
눈 속에 고립 되어 산 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그 날들 마다
나는 이 곳이 국경의 긴 터널이 아닐까 생각하고는 했다.
제설을 하며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던 나 자신을,
온천 게이샤 마냥 세상의 빈축을 사지 않은 것 마저,
그 모습에 가까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곳이라 생각하고는 했다.

번역가 사이덴 스티커는
설국을 번역하며 자신의 해석을 덧붙였다.

온천지에서부터 온천지로 싫다고 하면서도
헤메야 하는 그 숙명이,
무절제된 아름다움을 그대로 섬세하게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소설의 여주인공에 온천 게이샤로 하고,
배경에 어두운 설국을 선택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어두움과 무절제된 아름다움은,
그의 주된 작품의 바닥을 흐르는 기조이다.

나는 이러한 작품 해설 속 이 대목을 읽으며
어쩌면 남들은 관광으로 와서 수영하고 등산하며, 겨울에는 설국처럼 눈이 덮이는 이 울릉도가
싫어도 울릉도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며 생활하는
내 모습을 투영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하고는 했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또 한편으로 울릉도는 내게 있어 무진이 되었다.
밤새 잠들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아주 가끔 출근 시간 전 관사 밖 나리분지를 산책하다 보면
나를 옥죄이는 갑갑함 만큼 짙은 안개가
나리분지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한여름을 제외하면, 적어도 산 위에서는
일주일에 2~3일 정도는 안개가 짙게 깔려있었던 것 같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정말 먼 곳에 내가 있구나,
사람들과 떨어져 있구나 실감하고는 했다.

나의 무진에 대한 연상의 대부분은,
나를 돌봐 주고 있는 노인들에 대하여 신경질을 부리던 것과
골방 안에서의 공상과 불면을 쫒아 보려고 행했던 수음과
곧잘 편도선을 붓게 하던 독한 담배꽁초와
우편배달부를 기다리던 초조함 따위거나
그것들에 관련된 어떤 행위들이었다.

나는 울릉도에 오기 정말 싫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며 종국에는 겨울을 제외하면
퍽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즐기기도 했지만,
어찌되었던 정말 싫었고
여전히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그렇게는 못하겠다.

처음 몇 달 간은 정말 힘들었다.
내가 이 곳에 왜있나, 까마득한 시간이 남았구나.
생각했고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또 이곳에 있기 싫다는 이유로 금방 처리할 일들을
최대한 시간끌며 천천히 하기도 했다.
괜히 부대에 있기 싫어 틈만 나면 퇴근한 날이든,
또 주말이든 부대에서 최대한 멀리 떠나 이곳 저곳 돌아다녔다.
나갈 여건이 아닐때는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며 현실도피를 했다.

이 바닷가에서 보낸 1년,
그때 내가 쓴 모든 편지들 속에서
사람들은 '쓸쓸하다'라는 단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단어는 다소 천박하고 이제는
사람의 가슴에 호소해 오는
능력도 거의 상실해 버린
사어 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무렵의 내게는
그 말밖에 써야 할 말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었다.

나는 최대한 울릉도에서 벗어나고자,
BX관리관 등 최대한 악착같이 휴가를 모으거나
교육파견 등의 기회가 있으면 최대한 나가려고 했다.
나는 그곳이 외로웠고, 그곳을 벗어날때마다
느껴본 적 없는 해방감을 느끼곤 했다.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쫒아버렸다.

울릉도는, 울릉도에서의 그 생활은 나에게 있어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가까이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끌어당겨 주기로 하자.

하지만 울릉도에서 지나간, 만난, 엮인 수 많은 인연들이
손을 내밀어 주어 나는
말로는 하지 못하는 그 말을 속으로 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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